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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12.28 어른이 된다는 것

어른이 된다는 것

Posted 2006. 12. 28. 01:18, Filed under: 카테고리 없음

   선생님은 숨을 내쉬고 눈을 내리깔았다. 마치 숨이 공중에 퍼지는 모습을 지켜보기라도 한는 것처럼.

  "사실 내 안에는 모든 나이가 다 있네. 난 3살이기도 하고, 5살이기도 하고, 37살이기도 하고, 50살이기도 해. 그 세월들을 다 거쳐왔으니까. 그때가 어떤지 알지. 어린애가 되는 것이 적절할 때는 어린애인게 즐거워, 또 현명한 노인이 되는 것이 적절할 때는 현명한 어른인 것이 기쁘네. 어떤 나이든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라구! 지금 이 나이에 이르기까지 모든 나이가 다 내 안에 있어. 이해가 되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데 자네가 있는 그 자리가 어떻게 부러울 수 있겠나. 내가 다 거쳐온 시절인데?"

미치 앨봄, 공경희 역,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세종서적, 2005


  어릴적 나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고, '어른스러움'을 동경했었다. 부모님은 당신의 생각을 언제나 강요하거나 크게 드러내지는 않았다. 하지만 돌아가는 집안 사정과 부모님의 생각을 눈치빠르게 읽어버린 나는, 어리지만 '어른스러워야 하는' 행동양식을 자연스럽게 체화시켰다. 나중에야 깨달은 것이지만, 그것은 부모님의 보이지 않는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함이었고, 어릴적 남동생과의 미묘한 경쟁에서 나를 유리한 고지에 올려놓기 위한 방책이었다. 그에 대한 동생의 대응방식은 철저한 모방이었다. 심지어 내가 사먹는 과자 종류와 개수까지 똑같이 따라했다! 그랬던 그도 사춘기를 겪으면서 그것의 정 반대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바꿨다. '덜 합리적이지만 더 인간적인 것으로'. 나는 그때 명확히 의식하지는 못했지만 '냉정한 판단'을 삶이라는 나무를 재단하는 연장으로 사용하고 있었고 무언가 계속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나는 오히려 이제는 내가 나를 모방하던 동생에게 조금씩 배워야 할 처지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다 어느덧 우리는 '피보호인'이 아니라 충분히 '보호자'로서 기능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여전히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공부하고 있는 입장이지만, 부모님이 힘들여 돈을 벌어 오는것에 대해 전처럼 '관념적'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걱정하고, 가계경제에도 신경쓰게 되었다. 동생과 방을 따로 쓰게 된 이후 오랜만에 우연히 나란히 누워 자게 된 날, 어둠속에서 우리는 대화를 나눴다. 비록 이야기속에서였지만 동생이 사랑했던, 또 추억했던 이를 만날 수 있었고, 또 그래서 무척이나 놀랐다. 마치 부모님이 젊었을 때 만나던 다른 상대의 이야기를 해주는 느낌이랄까. 당연히 그럴만한 일들이지만 한편으로 무척이나 생경하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형제는 흔히 매우 가까운 사이라고 하지만 난 모르는 게 너무 많았던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어느덧 친구가 되어 있었다.

  나도 이제 20대의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나이가 한 살 많아질때마다 그 무게감이 엄습해오는것을 느낀다. 한살씩 더 먹을때마다 지난 일년에 대한 후회와 이제는 돌아오지 않는 시간, 잃어버린 기회에 대한 생각으로 속상했다. 그러나 이제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삶에 있어서 또다른 자리매김을 할 수 있고, 그렇게 '전과는 다른'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는 것에 기뻐할 수 있다. 지나간 시간은 사실 내안의 어딘가에 웅크리고 앉아 숨어있었을 뿐, 예전보다 좀 더 여유롭고 성숙한 마음으로 소중한 사람들을 대할 수 있게 되는 것도 나이가 주는, 세월이 주는 큰 축복이 아닐까.

(2006.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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