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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2.20 순수함이라는 잣대 3

순수함이라는 잣대

Posted 2007. 2. 20. 01:17, Filed under: 카테고리 없음

흔히 우리는 농촌 혹은 시골의 아이들을 "때묻지 않아 순수하다"라고 많이 표현한다. 그러나 우리가 과연 그들이 순수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얼마 전에 광산지역의 아이들을 만나고 왔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 정도의 아이들이었는데, 3~4학년 정도의 아이들이 가장 많았다. 그곳의 아이들은 일반적으로 "순수하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요건을 많이 갖추고 있었다. 우리가 처음 보는 사람들임에도 경계하기보다는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왔다. 뿐만아니라 요즘 도시지역 아이들은 밖에서 뛰어놀기보다는 컴퓨터 게임을 즐기는데 이들은 그렇지도 않았다.

내가 순수함이라는 잣대의 위험성을 제기하는 것은, "순수함"이라는 가치에 우열을 나누는 기준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도시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아이들"이라는 말을 분석해보자.

도시(악)↔시골(선)
세속적이고 현실적인 아이들(악)↔때묻지 않은 순수한 아이들(선)

이렇게만 보면 매우 좋은 말 같지만, 한 단계 더 들어가보자.

도시(우월한 것)↔시골(열등한 것)
똑똑한 아이들(우월한 것)↔순진해 빠진 아이들(열등한 것)

결국 이 아이들을 비하하거나, 혹은 신비한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곳 아이들의 행동양식이 그러한 것은 단지 경험의 차이일 뿐이다. 마을의 시가지라야 2차선 도로 양쪽으로 펼쳐진 1km정도의 1층 건물이 전부이고, 그나마 70~80년대 영화 배경이 될 만한 그런 건물들 뿐이다. 컴퓨터 자체가 귀한데다(시장쪽에 PC방이 있긴 하다) 부모님보다는 할머니/할아버지와 사는 아이들이 많기 때문에 인터넷 같은 것에 접하기 힘든 환경인 것이다.

따라서 농촌지역의 '순수한 아이들'을 찬미하는 것은 "나는 도시문물을 항상 접할 수 있어서 행복해요"라는 기만적 화법일 수 있다. 결국 '우리안의 오리엔탈리즘'으로 정리할 수 있을까? 게다가 '어린이'들을 어른과는 다른 하나의 다른 계급으로 보게 된 것은 근대에 들어서 만들어진 것이다(이건 지하생활자님이 설명해줬으면 좋겠다 ㅋㅋ). 하지만 아이들이 고민하는 문제들을 반드시 어른들이 고민하는 문제와 분절해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인가? 난 어렸을 때의 내 삶도 충분히 소중했고, 그 고민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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