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시나몬님과 함께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이명세 감독의 영화 "M"을 보았습니다. 사실 M은 여간한 극장에서는 막을 내린 지 오래지만, 관객들의 요청에 따라 씨네큐브에서 평일 오전 10:50분에 상영을 하고 있습니다. 독립영화라거나 대중성은 인정받지 못했지만 나름대로 가치를 지닌 영화들을 쉽게 구경하기 힘든 영화를 만날 수 있는 곳은 씨네큐브와 더불어 하이퍼텍나다, 스폰지하우스 등이 있지요.

전부터 보고 싶었으나 시간이 맞지 않아 이제서야 보게 된 M, 따로 사전 정보를 입수하고 가지는 않았기 때문에 "대체 멜로 영화인가 스릴러 영화인가"라는 궁금증을 안고 상영관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약 50~60명 정도가 관람할 수 있는 공간인데, 한 예닐곱명이서 본 것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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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www.m0820.com


시나몬님에 따르면 메이저 극장에서 M을 상영할 때는 영화 초반의 지루함 내지는 난해함 때문에 중간에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 하는데, 극장이 극장인 만큼 역시 다들 침착하게 영화에 집중하는 분위기였습니다. 현란한 영상과 음울한 화면에 쉽게 적응이 되지 않는 것은 사실이나, 20분 정도만 지나면 오히려 영화에 몰입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영화는 '첫사랑의 아픈 기억'을 모티브로 한 영화입니다. 이런 것을 밝히는 것이 스포일러일 수도 있지만, 애초에 이 영화에서는 줄거리가 크게 중요한 요소가 아니기 때문에 별로 상관은 없을 것 같습니다. 영화는 선형적으로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정신없이 현실계와 환상계, 혹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여기서 앳되고 순수한 느낌을 주어야 하는 첫사랑의 여학생이라면, 이연희(미미 역)를 캐스팅 한 것은 꽤나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제가 이연희를 좋아해서가 절대 아닙니다. ㅋㅋㅋ 물론 극 초반의 내레이션은 좀 어색했을지라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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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인 민우(강동원)는 소설가이면서도 한 줄 글을 쓸 수 없는 극심한 슬럼프에 빠져 있고, 약혼자인 은혜(공효진)를 두고도 무엇인가에 홀린 양, 정신을 놓고 지냅니다. 네, 바로 꿈인지 현실인지 그가 소설을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토록 잊으려고 했던 첫사랑 "미미"와 대면하게 되는 것이죠. 미로 안에서 보물을 찾는 것처럼, 수십번을 제자리로 돌아오면서도 내면의 응어리를 풀어내고 미미와(사실상 제가 보기에는 미미와 엇갈렸던 아픔과 미미를 아프게 했다는 스스로의 자책감과) 화해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민우에게 지친 은혜는 민우를 떠나려 하고, "그냥 사랑한다고 말해줄 순 없어?"라고 일갈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민우의 눈에 은혜의 모습 위에 미미의 모습이 겹치고 민우의 만류로 이들도 극적으로 화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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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블록버스터보다는 인간의 내면을 농밀하게 그리는 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 영화를 (양극단으로 치우치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꽤 흥미롭게 보았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감독의 메시지가 무엇인지는 명확하게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본 영화'에서 느낀 화두는 과거의 상처에 적극적으로 대면한다면 그 트라우마를 과연 극복할 수 있게 되는가의 문제입니다.물론 한 사람의 경험과 기억이 그 사람을 지배할 뿐만 아니라, 이런 부분에 의해서 사람이 크게 좌우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저로서는 공감할 수 있는 주제입니다.

예를 들어 집안의 사업이 실패해서 어렵게 자랐거나, 부모님간의 혹은 부모님과의 관계가 좋지 않아 충분한 애정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고 하면 알게 모르게 이러한 경험들이 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곤 하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제적 성공에 집착한다거나, 타인과의 관계가 단절될까 두려워 지나치계 관계지향적이 된다거나요. 이러한 경우 자신의 과거를 객관적으로 살펴보고 자신이 "닮고 싶어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어느새 자신에게 내면화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음으로써, 상처를 치유하는 데 분명 도움이 되겠지요.

그러나 이것이 말처럼 쉬운 작업이 아닙니다. 영화에서 민우가 그랬던 것처럼 엄청난 혼란과 고통을 겪어야 한 단계 거듭날 수 있는 것인데요. 다만 이렇게 어렵다고 해도 현실에만 안주하거나 패배주의에 빠지게 되는 건 원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나이가 들고 많은 경험을 한다 해도 스스로에 대한 고민과 세상을 향한 의심은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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