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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8.31 벌써 1년(복학생 Edit) 1
  2. 2006.12.31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1
  3. 2006.12.28 화려한 대학 캠퍼스 사진의 이면

벌써 1년(복학생 Edit)

Posted 2007. 8. 31. 03:39, Filed under: 카테고리 없음

지난 시간은 나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라고 하면 너무 번역체같아서 싫다. 그냥 내가 없이도 잘만 흐르던 시간은 내가 돌아온 이후에도 예전와 다를바 없이 잘 지나간 것이다. 그동안 나는 변했고 내 주변 사람들도 변했고, 우리를 둘러싼 환경도 변했을 뿐.

생각하는걸 쉬어 생각없이 살았을지언정, 학교는 쉬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덧 졸업이 성큼 다가와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제 졸업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그러나 마음은 예전과 달리 이미 학교를 떠나 있는 것 같다. 왜일까, 단지 학교를 오래 다녀서일까? 단순히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반년 전, 야심차게 준비했던 학회 창설은 완전한 실패로 돌아가고, 이제 대학의 학생사회는 '전과 같지 않다'. 이것은 나의 대부분을 쏟아부어 각종 모임과 활동에 투자하던 대학 1, 2학년 시절을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느낌과 더불어 트라우마가 되었다.

대표적으로, 내 대학생활에 있어서 큰 의미를 가지는 '반'이라는 공간도 이제는 존재의미를 잃었다. 그쪽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작년만 해도 그렇지 않았던 내가 요즈음 그쪽에 참여하지 않고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 이유는 반이라는 공간의 역할과 역량에 대한 마지막 희망도 버렸기 때문이다. 뭐 내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 하는 까닭도 있지만, 이제 마지막 가능성에 대한 판단을 내리고 그에 대한 애정을 거둬들이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제 더이상 대학은 학문과 지식의 전당이며, 젊음과 도전이 가득한 곳이 아니다. 이전에도 그랬겠지만, 그야말로 '스펙'을 쌓고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한 곳일 뿐이다. 대학생으로서 많은 고민과 경험을 해 본다고 하다가 자칫 자기 몫을 챙기지 못하면 바보 취급만 받을 뿐이다.

흔히 "대학 초년생때만 할 수 있는 경험이 있다"라며, 공부나 스펙에 도움이 되는 '자기계발'에 소홀한 것을 합리화하는 것은 궤변일 수 있다. 요즘처럼 학사제도도 빡빡해지고, 취직하기도 힘든 판에 자기 커리어를 누가 책임져 줄 것이란 말인가. 오히려 1학년때부터 착실히 학점관리하고 영어공부 하고, 외국 다녀와서 인턴 경험 하고 취직하는 친구들이 현명한 것이겠지.

생각해보면 우리는 대학생활 동안 자기만의 인생계획과 관점을 세울 여유를 가지지 못한다. 장기 계획은 커녕 우리는 학점의 소수점 둘째 자리에 목매고, 영어점수에 매달리고, 가만 있으면 불안하니 자격증이라도 따려 하고, 꼭 무언가를 계속 해야할 것 같은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세상은 '학점이 좋고, 토익점수가 높고, 사회경험이 많은' 인재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저런 '강박'을 가진 인재를 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잠시 멈추어 자신을 뒤돌아보며 무엇이 옳고 어떤 것이 부조리한지 생각하기보다는, 이유도 모른 채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여 '성과'를 낼 수 있는 그런 인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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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Posted 2006. 12. 31. 05:05, Filed under: 카테고리 없음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대학교라는 곳에 입학해서는,
대학에 잘 '적응'하는 것 자체가 나에게 큰 도전이 되었다.

달라진 시간 관념, 대학 강의, 반 활동이나 동아리 활동, '성인'으로 대접받게 되는 새로운 환경......

그러나 어느 정도 적응하고 나서는 내가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만 만족하게 되었다. 이를테면 술 적당히 마시고 시시껄렁한 농담이나 하면서 사람들 많이 만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책 좀 읽으면서 양식도 없는 주제에 개뿔 아는척만 하고 자기만족에 빠지고.

막상 지금까지는 '적응'의 문제에 있어서 이러한 것들이 비교적 '성공적'이었던데다 여기에 재미까지 느끼게 되니, 무언가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보다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자꾸 승부하게 된다. 삶이나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자꾸 안주하게 된다는 것.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 말하기의 '대상'이 달라졌을 뿐, 결국 했던 얘기를 반복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그릇 자체가 작은데 언제까지나 그거 하나만 붙잡고 만족하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평생 추억만 파먹고 살 수는 없는 것인데.

만약 내가 단지 적당히 술마시고 사람들 비위맞춰줄 수 있는 능력과, 실무에 적용가능한 '테크니컬한' 지식만 갖추어서 대학 문을 나선다면 나에게 있어서 그러한 부분들이 거세되었을 때 어떻게 될까? 예를들어 몸이 많이 안좋아져서 술을 마시게 될 수 없게 된다던지, 기술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내가 아는 것들이 전혀 쓸모가 없게 된다면지 하면 말이다.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이렇게 표류할 것이 분명하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매우 주체적인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기보다는 오히려 구체적인 삶의 맥락 속에서만 존재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인생에 있어서 '내공'이 중요한 것이겠지. 따라서 술자리가 만든 '나'의 허구적인 모습에만 의존해서는 안 될 것이며, 삶을 바라보는 지혜로서의 공부가 계속되어야 한다. 나는 지금도 어쩌면 매우 '타협적'인 공부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고민과 방황과 고뇌는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하는 것이 좋다.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연속"이라 했지만, 내 인생도 역시 도전과 응전의 연속임을 잊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

2006년의 마지막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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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대학 캠퍼스 사진의 이면

Posted 2006. 12. 28. 01:06, Filed under: 카테고리 없음

사실 나도 학교 풍경사진을 '꽤 긍정적인 관점에서' 찍어서 많이 올리고는 있지만, 여기에는 많은 함정이 있다.

내가 찍은 '아름다운 학교'의 모습들은 내 자의적 판단에 의해 취사선택된 기억의 일부일 뿐이라는 것이다. 당연한 것이지만, 따라서 이것이 그 당시 학교의 모습을 전부 나타내 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봄의 학교에는 나처럼 아름다운 배경을 찾아 사진을 찍어대는 사람도 있으나, 도서관이나 고시실에서 시험을 좇아 햇빛도 구경하기 어려울 정도로 공부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백양로에서 교통정리를 하시는 분들, 건물 청소를 하시는 분들, 학교 식당에서 음식을 담당하시는 분들 등 내가 학교에서 만나는 사람은 이 학교 학생인 선후배동기들과 교수뿐만이 아니다. 흔히 강사라고 부르는 비정규직교수들과 주로 용역 회사에 고용되어 일하는 노동자 등 우리는 상당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으로 인해 학교가 돌아갈 수 있는 것임을 쉽게 인지하지는 못한다.

게다가 저 학교 사진을 보고,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바로 뒤에 총학생회가 본관점거를 하며 교육투쟁을 하고 있고, 학교 곳곳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쉴 시간도 없이 최저임금수준의 보수로 헐떡인다는 사실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이야 양쪽 측면이 모두 쉽게 떠오르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저 이면에 숨겨진 일들을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결국 내 선택으로 인해 내 기억에는 편향이 일어날 것이다.

조금만 현상의 이면을 보려 노력해보자. 인간은 본래 미를 추구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현실세계에는 그렇게도 아름다운것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2004.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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